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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0층과 1층의 기준(조선, 9/17)
관리자
작성일 : 15-09-17 11:21  조회 : 1,930회 
언제 뜨거웠느냐는 듯 서늘해지니 문득 떠오른다. 이번 여름 프랑스 파리도 찌는 폭염은 마찬가지였다. 딸은 첫 유럽 나들이에 낯설고 두려운 기색이더니 한낮 더위가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도 비슷하다는 것에 오히려 반색했다. 다행히 규모와 양식이 색다른 도시 디자인과 오랜 건축물들도 딸의 눈을 상쾌하게 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걸림돌을 만났다. 엘리베이터에서 '0층'을 발견한 것이다.

프랑스의 0층은 입구의 현관 층이라고 설명해주자 잠시 갸우뚱하더니 우리나라엔 왜 0층이 없는지 물어왔다. 그 질문은 내겐 꽤 심오한 여진(餘震)을 남겼다. 십수 년 전 그걸 발견한 나의 첫 반응은 어째서 이 나라는 있지도 않은 0층을 쓰는 걸까였기 때문이다. 사물의 차이를 발견할 때 자신의 것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상대의 것에 의혹을 던졌던 나와 달리 딸은 자기 세계의 상대성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계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보자. 분명 아무 층도 없는 상태가 0층이다. 한 개의 층을 쌓아 올라서면 그곳은 1층, 두 개의 층을 쌓고 올라서면 그곳은 2층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층을 쌓지 않은 맨바닥을 놓고 1층이라 부른다. 왜일까. 죽을 사(死)가 연상된다고 4층을 5층이라고 명기한 한자 세대의 불안감처럼 분명 우리만의 전통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 추리해보지만 쉬이 찾을 길 없다. 수천 년간 1층 말고는 복층 생활을 해온 적 없던 역사적 조건 속에서 근대 일본을 통해 이식된 미국식 층수 개념이 그대로 정착한 게 아닐까 싶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거나 형상화되지 않은 것을 인정해주는 0이라는 공백의 개념을 발견하기 이전 시대의 배타적인 셈법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딸의 그 질문은 센강 유람선의 산들바람보다 나를 상쾌하게 해주었다. 빨리 커서 우리나라에도 0층을 만들어보라고 귀띔해줬다. 식민지 유산이라 그토록 불편했던 번지 주소가 때늦게 합리적인 도로명 주소로 바뀐 후의 엇갈린 반응처럼 환영받을지, 지탄받을지 자못 궁금하다